2025년 헬스케어 투자 동향: AI가 시장 재편, 메가딜 중심으로 질적 성장

전체 딜 건수 감소에도 AI 스타트업에 180억 달러 집중… 선별적 투자 환경 속 '증거 기반' 스타트업이 승자로

헬스케어 VC 시장, 양적 축소 속 구조적 변화

2025년 글로벌 헬스케어 벤처캐피털 시장이 전반적인 위축세를 보인 가운데, AI 분야만큼은 예외적인 강세를 나타낸 것으로 분석됐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최근 발표한 '2025 헬스케어 투자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과 유럽의 헬스케어 VC 투자 총액은 468억 달러(약 68조 원)로 전년 대비 12% 감소했다. 딜 건수 역시 7% 줄어든 70억 달러 규모에 그쳤다. 이는 2025년 초 업계 전문가들이 전망했던 '딜 회복의 해'와는 상반된 결과다.

헬스케어 컨설팅 기업 카우프만홀(Kaufman Hall)의 별도 조사에서도 병원 및 헬스시스템 M&A가 2025년 감소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나, 헬스케어 섹터 전반의 투자 위축이 확인됐다.

AI 투자, 전체 헬스케어 지출의 절반 육박

그러나 세부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SVB 보고서에 따르면 AI 관련 투자는 2025년 전체 헬스케어 투자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80억 달러(약 26조 원) 이상을 기록했다. 특히 헬스테크(HealthTech)와 의료기기(Medical Devices) 분야에서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집중됐다.

SVB의 생명과학·헬스케어 부문 총괄 메건 셰펠(Megan Scheffel)은 "AI가 메가딜의 정의 자체를 재편했다"며 "대다수 대형 투자가 AI 스타트업을 향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헬스케어 시장에서 AI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핵심 투자 테마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진단 AI, 신약 개발 플랫폼, 임상시험 최적화, 의료 영상 분석 등 다양한 세부 영역에서 AI 기술이 실질적 가치를 입증하면서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

'선별적 자본 환경': 시리즈 A 기준 대폭 상향

2025년 헬스케어 투자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투자 기준의 엄격화다.

셰펠은 "2025년은 헬스케어 섹터 내에서 더욱 선별적이고 절제된 자본 환경을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해진 환경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대한 실사(Due Diligence) 기준이 크게 높아졌으며, VC 투자자들은 경영진과 창업자들에게 과학적 근거와 기술 완성도 면에서 더 진전된 상태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시리즈 A 라운드의 진입 장벽이 과거보다 현저히 높아졌다. 투자자들은 자금 집행 전에 더 강력한 연구 데이터와 과학적 검증을 기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딜 건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투자의 질적 수준이 향상됐음을 의미한다.

시사점: 'AI 과대광고'에서 '증거 기반 성과'로

이번 보고서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헬스케어 AI 시장이 초기 과대광고(Hype) 단계를 지나 실질적 성과를 요구하는 성숙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셰펠은 "측정 가능한 성과가 AI 과대광고 사이클보다 중요해지면서,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실질적이고 입증된 성공이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유망 분야로는 '장수(Longevity)' 섹터가 꼽혔다. 셰펠은 이 분야에서 이미 "흥미로운 융합"이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하며, AI 기술과 노화 방지·수명 연장 연구의 결합이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헬스테크 업계에 주는 함의

글로벌 헬스케어 투자 시장의 이 같은 변화는 한국 헬스테크 스타트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AI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제 명확한 임상적 근거와 측정 가능한 성과를 요구한다. 국내 헬스케어 AI 스타트업들도 기술 개발과 함께 임상 검증 및 규제 승인 트랙을 병행해야 글로벌 투자 유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둘째, 시리즈 A 진입 장벽 상승은 초기 단계 스타트업의 부트스트래핑 역량과 시드 단계 자금 확보 전략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정부 R&D 지원,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전략적 파트너십 등을 통해 시리즈 A 이전에 충분한 기술·사업 검증을 완료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셋째, 장수·노화 분야의 부상은 새로운 시장 기회를 의미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한국의 인구구조적 특성을 고려할 때, 국내 스타트업들이 장수 테크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여지가 있다.

본 기사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의 2025년 헬스케어 투자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